<나를 찍지 말아줘>. 지난번에 리뷰한 <나는 기자로소이다>에 이어서 제목부터 카메라와 텐구를 암시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고의적으로 책의 구성을 무시하고 꿋꿋이 연대를 따라서 역순으로 쫓아온 덕에 사진 필름(신문) -> 활동사진(영화, 동영상) -> 텔레비전(방송)으로 이어지는 매체의 발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군요. 이에 따른 배경은 68계, 1953년.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할 지도 모르는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니 후술하겠습니다.
이 글은 과거의 기록 앞에서 큰 고민에 빠진 사나에를 비추며 시작합니다. 기록의 내용이 모호하다거나 거짓이 적혀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두루마리에는 분명 모리야 신사에서 내려오는 의례의 기록이 쓰여 있었고, 하나같이 상세한 덕에 한 권만 읽어도 행사를 진행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확신을 가지기 위해 여러 권을 읽으면서 생겼습니다. 의례의 세부 절차와 전통이 매번 달라졌기 때문이죠.
일반인의 입장에서 가볍게 생각해 보면, 시대가 변했으니 의례도 함께 바뀌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너무 뻔한 해답일까요? 어찌 되었건, 작중의 사나에는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시대에 맞는 새 의례를 세워야 할 처지에 놓입니다. 바깥 세계의 선례를 참조하고 협력자인 캇파를 찾아가는 부분은 나중에 사나에가 똑같은 두루마리를 썼을 때 들어갈 내용이 될 겁니다. 작품은 이런 면에서 사나에의 출발점을 선대 무녀들과 동일선상에 놓습니다.
적어도 이제 두루마리의 내용이 왜 그리 들쭉날쭉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의례와 전통을 이어야 하는 무녀들의 처지가 여러 의미로 똑같았기 때문이죠. 그들도 똑같이 다른 사례를 참조하고 자신의 처지에 맞게 변형해서 새 의례를 만들었을 겁니다. 이걸 후대에서 바라보면 똑같이 뒤죽박죽이고, 안되겠단 심정으로 새 의례를 만들며 무한히 반복해왔던 것.
사나에는 새 의례의 모범으로 1953년에 열린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택했네요.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나타나는 건 환상향의 일상입니다. 코스즈와 짤막한 콩트를 찍는 사나에, 제멋대로 시공을 준비하는 캇파들. 각각 <동방영나암>과 <동방자가선>을 읽는 듯한 표현이라 고전적인 뉘앙스를 받았습니다.
마침내 아큐가 등장하자 사나에는 캇파들이 암시했던 뜻밖의 진실을 전해받습니다. 전대 아레의 계승자였던 ‘히에다노 아야’가 이미 마을에 계승식을 생중계했던 것이죠. 책에서만 보던 선배 무녀를 대신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옛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는 독특한 장면이었습니다(아큐의 캐릭터성을 잘 살린 장면이군요). 본문은 여기에서 일종의 개척자로 거듭나려던 사나에의 캐릭터성을 다시 탐색자로 바꾸어놓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이야기가 히에다노 아큐를 통해 변주되어 나타나고, 사나에는 두 사례를 모두 접하면서 이야기의 진실에 다가가는 구성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작품에 반영된 현실 세계 유래의 모티브이며, 작중의 인물들에게도 행동의 직/간접적인 동기로서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서 제가 눈여겨본 장면은 사나에보다 히에다노 아야가 엘리자베스 2세와 더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점입니다. 사나에는 이미 무녀이고 카제하후리이자 현인신이지만, 히에다노 아야는 계승식을 치르고 나서야 정식으로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관식을 치러야 완전히 여왕으로 거듭나는 엘리자베스 2세처럼 말이죠. 부수적인 동기 또한 더욱 구체적이고 엘리자베스 2세와 닮았습니다.
여기서 잠시,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52년 말에서 53년 초로 돌아가 볼 때가 되었군요. 아큐가 증언하듯 ‘인간마을이 이래저래 분위기가 안 좋았었죠’에 해당하는 바깥 세계의 사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도 영국의 배급제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보다 길게 지속되었습니다. 비누, 빵, 밀가루, 설탕, 고기, 초콜릿, 가솔린에 걸친 배급제가 완전히 폐지되기까지는 총 9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1954). 제1차 세계대전까지 합치면 무려 20년에 다다르는 배급제 아래 영국의 전반적인 식문화는 격변을 겪었죠. 냉전의 기류가 전세계를 뒤덮기 시작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52년 말에는 그레이트 스모그라는 대규모의 환경 재해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5일간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스모그가 낀 동안 범죄율이 치솟고 현대의 추산으로 12,000명의 사람이 의료체계 마비와 호흡기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Martinez & Julia, 2025). 사회의 분위기도 당연히 흉흉합니다. 인간 마을의 상황은 조금 더 낫거나 간략화되어 있지만, 각자 치르는 예식을 생중계하기까지의 전체적인 맥락은 비슷합니다.
이럴 때 상류층의 존재의미는 무엇일까요? 대다수의 눈에 띄지 않게 가만히 있는 것도 나름 방법이지만, 화려한 예식으로 사회가 건재함을 과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허례허식이란 비판을 잠시 접어두고 보자면, 의례적인 절차야말로 상류층의 존재의의를 설파하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이니까요. 이에 흥미롭게도 예로부터 수많은 사회의 지배층은 상황이 좋지 않아도 이런 행사에는 꼭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당장 먹고살기 각박한 판에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잘 설득하지 못하는 상류층은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프랑스 혁명의 의의야 말할 것도 없고,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선 패전이 가시화되자 1918년 11월에 혁명으로 황족과 제후들이 쫓겨났습니다. 이런 사례를 생각해 볼 때 마을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계승식을 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행태일지도 모릅니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오히려 더 성대하게 열어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자리를 굳혀야죠.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의 한 장면. 필립 공이 엘리자베스 2세에게 자신의 개혁안을 설명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이었던 필립 마운트배튼도 1922년 그리스-튀르키예 전쟁의 패전 이후로 일가가 추방당한 케이스입니다. 망명길에서 자라며 민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통감한 마운트배튼이 아내이자 여왕의 대관식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것도 당연한 일. 시대의 변화를 뼈저리게 통감한 덕에 대처법도 단순히 규모를 키우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사나에나 아큐가 혼자서 떠올리지 못했던 TV 중계를 전면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한 것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f5ozTPS-ipY&t=2s
덕분에 엘리자베스 2세는 국민의 분노를 사기는커녕 훌륭한 대관식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전국에 알릴 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왕실의 모범이 될 만한 새 전통을 세운 거죠. 더군다나 이 작품은 현실의 엘리자베스 2세가 겪은 일을 끊임없이 변주해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시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냈으니 아까의 뻔한 해답에 주석을 붙일 차례가 온 거죠.
하지만 배경을 파악했다고 해서 작품의 전개가 100% 도출되지는 않습니다. 현실 역사대로라면 찰스 3세의 대관식처럼 이 새로이 생긴 전통이 아큐의 대까지 이어졌겠죠. 우선 작중에서 히에다노 아큐(아야)의 영상을 중계한 건 이름이 같은 샤메이마루 아야였습니다. 사나에가 이번에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지만, 아야는 거절하고 대신 하타테의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또한 히에다노 아야의 의견으로 인해서 계승식의 중계가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는 걸 파악하게 됩니다.
메구무의 지시(사나에보다 윗선인 카나코와만 만나겠다)와 히에다노 아야와 가신들의 미묘한 대립을 감상할수록 소설의 의도가 분명해집니다. 의례를 단순히 상류층이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이해관계와 권력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죠. 때문에 사나에 개인에 맞춰졌던 시점도 최후반부에서는 다변화되고 있습니다. 각각에 맞는 역할과 자리를 가지고 말이죠.
이 과정에서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개개인은 상하류층 관계 없이 톱니바퀴로 변모합니다.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관식에 카메라를 들이기 전에도 영국 왕실은 카메라의 포커스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대관식의 TV 중계는 그걸 가장 극적으로 확인시켜준 사건이었을 뿐이죠.
히에다노 아야의 당혹감과 고민은 <더 크라운>이라는 드라마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과 생각, 어쩌면 긍정적인 면이 아닌 사생활마저 대중들의 가십거리나 평가의 대상이 되는 삶. <더 크라운>에서는 이를 끊임없이 엘리자베스 마운트배튼이라는 개인이 소멸되는 과정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사나에나 아큐는 엘리자베스 2세가 아니었으므로 끝내 그런 삶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에 따르자면 긍정적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고 톱니바퀴가 어긋나는 장면입니다. 샤메이마루 아야의 실패작이라는 자조는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포커스 속 공인을 담아야만 하는 자리에서 ‘히에다노 아야’라는 개인을 담아버린 실수는 이 팬픽의 제목만큼이나 뼈아팠을 겁니다.
<나를 찍지 말아줘>.
이 소설의 전개는 사나에를 통해 발산했다가 두 명의 아야가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수렴합니다. 소설이 설파하는 주제 또한, 시대의 변화와 예식에 얽힌 권력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권력의 유지 수단인 카메라 앞에 사라지는 개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때문에 마지막에 남는 개인의 한자락을 비밀로 남기는 결말이 특별한 여운을 주는 것 같네요. 과감히 시대를 거부하지만 그 선택의 뒷맛은 환상향에서조차 오로지 개인의 몫이란 걸지, 일견 낭만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깔끔함이 돋보이는 결말이었습니다.
그럼 다음 편은 78계, <History and the Bullet in the air>의 리뷰로 찾아뵙겠습니다! 찾아볼 레퍼런스의 분량 덕에 벌써 정신이 아득해지네요.
BBC. (2022, May 30). The Queen’s Coronation | Elizabeth: The Unseen Queen – BBC [Video].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f5ozTPS-ipY
Martinez, & Julia. (2025, February 6). Great Smog of London | 1952, Cause, deaths, & facts. Encyclopedia Britannica. https://www.britannica.com/event/Great-Smog-of-London
Morgan, P. (Executive Producer). (2016). The Crown Season I [TV series]. Left Bank Pictures, Sony Pictures Tele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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