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작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입니다. 저번에 리뷰했던 상하이 속 서양의 앨리스와 다르게 환상향에 떨어진 동양의 앨리스를 그리는 작품이죠. 복잡한 분석도 좋지만, 때로는 한 명의 독자로서 읽은 그대로의 감상을 전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서 오늘 리뷰도 그렇게 가보겠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등장하는 츄오(中央) 본선, 고후(甲府), 야마가타(山形), 모가미강(最上川), 치노(茅野), 시모스와(下諏訪) 등등의 실제 지명과 고유명사가 다분히 일본적인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동방이나 환상향이 이미 일본적이지 않느냐고 누군가 물으면 할 말이 없겠지만, 이러한 단어들은 바깥 세계의 실제 일본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일본적’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또한 이런 일본적인 공간 속에서 시대상은 어떨지 보면, 1923년. 다이쇼(大正) 12년입니다. 이전의 메이지(明治)와 대전기 이후의 쇼와(昭和) 시대와 비교하면 일본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좋았던 시절)이라고 할 만한 시기죠. 일본적인 공간과 일본적인 시간을 담았으니, 이제 일본적인 인물의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
첫 장의 주인공인 미노루는 활동사진(영화의 옛말)의 연사입니다. 후편인 1905년, <나는 기자로소이다>에서 사진이 등장하고, 전전편인 1953년, <나를 찍지 말아줘>에서 영상 중계가 등장함을 보면 재미있는 시대상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매체가 변화했음을 통해 책의 주제인 역사를 재확인하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또한 미노루는 상영관에서 연기를 진행하며 이런 기록에 감정을 덧입히는 역할을 합니다. 이때 덧입혀지는 감정은 어디서나 거의 같게 재현가능한 유성영화와는 달리 ‘일시적이고’ ‘해석에 따라 현장에서 무한히 달라질 여지’가 있습니다. 영화에 아직 연극적인 전통이 남아있던 시대의 한 순간인 셈이죠.
이런 미노루의 일본적인 고민이란? 희노애락과 같은 감정을 능숙하게 다뤄내는 미노루였지만, 딱 하나 걸림돌이 되는 것은 ‘일본적이고 너무나 일본적인’ 신관의 감정이었습니다. 신앙심. 하지만 사나에의 할머니가 무녀로 일했던 1923년에도 이미 일본의 신토 신앙은 천천히 과거의 유산이 되고 있었습니다.
활동사진 연사인 미노루는 일본인이고, 모리야 신사의 카제하후리도 일본인입니다. 하지만 두 일본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입니다. 메이지 유신(1868) 이후 55년이 지나자 역사는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구세기(신앙, 전통)와 신세기(발전, 여명)의 교차야말로 근대적인 향수를 나타낸다는 평을 남기고 싶군요.
첫 대목은 일본을 두고 고민하는 일본인들의 대화였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는?
두 번째 대목에서는 시공간이 모두 바뀐 헤이세이(1989~2019)의 환상향에 미노루의 동생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입은 파란 원피스 대신에 샛노란 기모노를 입었고, 오빠인 미노루처럼 활동사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사치코, 환상향에 떨어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입니다. <타케토리모노가타리> 관람, 레이무나 마리사와의 대화를 거치면서 일상을 보내는 모습. 조금 보니 동생 아니랄까봐 오빠랑 어딘가 매우 닮았습니다. 심지어 사나에와 만났을 때는 자기 이름을 미노루라고 하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일지는 추후 등장하지만, 환상들이를 거치면서 두 사람의 인격이 한 사람에게 섞여버린 것이죠. 이 때문에 ‘샛노란 기모노를 입은 소녀’의 행적은 꿈처럼 붕 떠있는 느낌과 함께 다분히 중의적으로 읽혔습니다.
시점의 변환을 경계로 현실과 비현실이 나뉘어 있으니, 소녀의 아직 두루뭉술한 캐릭터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점이 또 바뀔 때를 주목했었습니다. 작중에선 별다른 설명 없이 상황만으로 소녀의 ‘일본인다움’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약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밑의 영상을 한번 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KNnyBakJXgI
여기서 저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그 중에서도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 옹의 색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지진과 같은 일종의 재앙, 불타는 도시, 가족관계, 환상적인 배경. 지면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심지어 후기에서까지 작품을 써주신 덕에 더욱 명확해지는군요. 사치코의 캐릭터성은 한때의 다이쇼를 겪은 일본인 그 자체입니다. 이 때문인지 바깥 세계의 사치코가 겪은 인생역정에서는 NHK 연속 TV소설 <오싱>이 연상되었습니다(오싱의 아들은 전사, 남편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고 자결하는 장면).

역사를 다룬다고 해서 주인공이 꼭 엄청난 영향력이 있거나 능력을 가질 필요는 없지요. <shanghai>가 이 점을 레퍼런스의 폭격과 옛스러운 문체로 나타내었다면, 이번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당대 일본인이 공유하는 이야기와 일상물의 문법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싱>은 끝끝내 씁쓸하지만 본편은 그나마 행복한 결말이란 것도 눈여겨 볼만 하군요. 아마 그 시대를 어렵사리 헤쳐나온 사치코에게 주는 두 번째 기회가 아니었을지.
순서상 전편의 묵직함을 겪고 나니 정말로 단비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정말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면, 사치코의 삶을 연재 같은 형태로 더 길게 읽고 싶다는 독자의 사소한 욕심이 아닐까요. 그럼 이만 마치고 다음 리뷰를 준비할 차례가 되었군요. 정말로 기다렸던 60계, 1945년: <구상천>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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